2020년7월4일 동생이 오랜만에 휴가로 집으로 왔다. 나주에 동생의 여자친구가 살았는데, 집안끼리 예전부터 알고 지냈다. 나와 동생, 어머니 셋, 동생 여자친구와 그녀의 어머니 총 5명이 점심을 먹고 나주에 유일한 스타벅스로 갔다. 그곳은 너무 사람이 많고 시끄러워 근처 공원으로 갔다.

 공원에서 바람은 선선하고, 햇빛은 없어서 적당한 날씨에 공원의 꽃은 만발했다. 그곳에서는 놀이터가 있었다. 놀이터의 기구는 페달을 돌리면 전력이 발생해 그 힘으로 움직였다. 나도, 동생도 놀이기구를 타고 심지어는 우리 어머니도 타러갔다. 눈치 볼 것 없이, 나이 20중반, 20후반, 50중반의 사람들이 단순히 페달을 돌리고 한반퀴 도는 장치 일뿐인데 왜 즐거웠을까? 오히려 부모들이 태우려는 애들보다 다른 어른들도 더 신나 보였다.

  점심을 먹은지 얼마 되지 않았고, 한적 곳에, 신뢰하는 사람들과 교류를 한다는 점, 불안을 일으키는 요소는 없었다. 여기서 좀 더 사람들에게 안정된 상태에서 조금 더 유흥과 즐거움이 필요하다. 아이들의 놀이터는 줄어들지만, 어른들의 놀이터는 없다. 시간이 흐를수록 좀 더 신뢰가 있는 관계가 줄어 들고(같이 놀 사람들이 줄어 들고) 정말 신나게 논다는 의미가 달라지고 논다는건 돈을 쓴다는 의미가 같이 따라간다. 또한 우리가 속히 논다는 것을 많이 정리하는데, 정말 잘 논다는 게 무엇일까?

 아이도 어른도 같이 놀 수 있는 놀이터는 무엇이 필요할까? 시소와 같이 좀 더 무거운 사람은 두 다리에 무게를 실어주어 좀 더 가벼운 무게의 사람(혹은 아이)가 박차고 시소를 높이 오르고 내릴 수 있도록 무게를 맞춰 주어야 한다. 놀이공원은 비용을 내고 소비를 하지, 놀이를 만들어내지는 못한다. 물론 놀이기구를 타면서 입을 벌리고 타는 둥, 셀카를 찍는 여러가지 미니 게임정도는 만들어서 할 수 있겠지만, 아무 것도 없는 공터에서 현재를 사는 아이와 어른은 던져놓고, 스마트 폰도 없다면 그들은 심심해 죽음에 이르지는 (경우에 따라)않겠지만, 서먹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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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도르노에 따르면 문화는 정신을, 감정 고양시키며, 정진하게 하는 좀 더 나은 존재와 새로운 정신과 새로운 감정으로, 새로운 세계를 맞이하거나, 만들게 할 수 있는 힘을 주는 것이라 설명한다. 즉 생산을 할 수 있는 실마리나, 생산할 수 있는 능력을 말한다. 또한 모든 인간에게 부여되며 가능케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현대Comtemporary에서는 우리는 기존에 공정에 생산된 것만을 소비하도록 감정적, 정신적으로 짜여져 있는 존재라 아도르노는 말한다. 우리가 욕구하는 것도, 욕망하는 것도 이미 의도 된대로 일어나는 현상이다. 문화산업과 문화, 예술은 다르다. 모든 것이 척도는 능력과 경제력이다. 문화로서 돈을 막대하게 버는 것이라면 국위선양이며, 새로운 이슈와 새로운 세계다. 정말로 진정히 새로운 것인지, 정말로 놀라운 것인지 잘 모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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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고양이가 묻혀야 할 땅은 없다.

이홍범

 

 어젯밤에 비가 내렸다. 시원하다 못해 시리기까지 한 날씨에 그는 7월에 외투를 챙겨 입고 나섰다. 다음날 화창하게 비가 개이고, 햇살이 좋아 낮에 거니는 날씨였다. 아침에 건강보험 잡무를 처리하고 나서 대학원실로 차로 가고 있었다. 날이 좋고, ‘혁오밴드<Paul>의 노래를 듣고 있었다. 우리의 마음을 돌보자는 내용을 보는 서정적인 노래였다. 가사에서는 우리가 무엇을 버려버렸다. 우리는 늙어 버렸다. 무엇을 잃어 버렸고, 우리는 어떻게 늙어 버렸을까? 항상 푸르를 수는 없겠지.

 

 초등학교 놀이터와 동네 교회 사이 길목을 지날 때, 중앙선을 유심히 처다 보게 되었다. 죽은 아기고양이. 안쓰럽게 벅차오르는 감정은 빠른 차의 속도에 맞춰서 지나쳐 가려고 했다. 그러나 그는 지금 조금 더 솔직해져야 하며, 표현해야한다. 그는 차속에서 갈등을 겪었다. 죽은 고양이를 데리고 가서 묻어 줘야하나, 아니면 그는 오전에 일보느라 공부하지 못한 시간을 빨리 학교에 가야하나. 전날의 지친 교수님과 바쁜 친구의 신뢰하는 사람들의 얼굴이 떠오른다. 그들과 내가 하고 싶은 것을 떠오르면 나는 아기 고양이를 데려다 땅에 묻어 스며들지 못할 콘크리트 바닥이 아닌 흙에 품어져야 했다. 인간으로서, 죽음에 대한 애도를 하며 인간으로 남는 것. 죽은 대상을 무의미한 대상이 아닌 의미 지어진 존재로서 대하고 아껴주는 것. 떠밀려지는 기분과 속도들을 거슬러서 다시 아기고양이에게 가기 전 준비를 했다.

 

 그는 나중에 이게 글을 쓸 때 도움이 될 수도 있는 점을 생각했다. 그리고 그의 스승의 말대로 평소 같으면 하지 않을 흐르는 유속과 타성에 맞춰 지나갈 그 흐름을 돌려 고양이에게 갈 준비를 했다.

 마트에서 빨간 목장갑, 흰 면장갑을 사야하나. 빨간 목장갑은 대상을 물건처럼 다루게 하는 느낌이다. 그러나 나는 그 고양이를 너무 온전히 느끼고 싶지 않아서 코팅된 빨간 장갑을 샀고, 흰 천을 같이 샀다. 종이 박스도 하나 얻었다. 마지막으로 동네 문구점에 들려 모종삽과 비닐봉투를 샀다.

 ‘민식이법이 살벌하게 적용되는 주정차 금지구간에 차를 세우고, 고양이를 흰 천으로 덮고, 빨간색으로 코팅된 장갑으로 들어 올려 종이상자에 담았다. 참으로 우리 사회에서 인간은 죽으면 자기가 살던 동네에 묻히지 못하고, 혼자서 살지도 못하는구나 싶다. (으깨진 빨간 덩어리. 검은 털의 몸통과 터져버린 머리. 말 그대로 형체를 알아보기 힘든 턱의 뼈. 축 늘어진 팔, 다리. )

 

 죽음에서 보여 지는 것들은, 묘한 감정이 들었다. 마트에서 돼지고기를 썰던 정육점 아저씨. 그 고기와 고양이는 무엇이 다른가. 사냥을 위해서 죽은 사냥. 식량으로 쓰이기 위한 가축.

 밤에 차에 치여 죽은 아기고양이. 그리고 아침에 뒤에 온 차로 여러 번 밟힌다. 그리고 더 선명히 밟혀진 낮에 또 뒤에 온 차들은 피해간다. 그리고 누군가 데리고 가서 흰 천에 싸여진 채 묻어주었다. 물론 시간이 있다고 생각하는 대학원생이 평일 낮에 하는 일이다. 만일 직장을 다니고 있었다면 애기치 않게 지나치거나, 아니면 나는 그 고양이를 좀 더 동일시 여겼을지도 아니면 이 날에 좀 더 감정적이거나, 또 마주하고 싶지 않은 개인적인 일이 있었을 지도 모른다. 그 고양이로 인해 약간 슬플지라도, 울지는 않는다.

 그는 점심 때 <대왕김밥> 가게에서 돈까스새우튀김을 시켜 매우 맛있게 먹었으며, 가게에 걸어 도착하기 전에 마주친 닥스훈트 종의 강아지에게 밝게 인사하며, 쓰다듬어 줬다.

 

 맛있게 점심을 먹는 그는 기분이 좋아졌고, 고양이를 잊었다. 다만 아직 처리하지 못한 박스와 박스 안에 남은 고양이의 빨간 피부의 살점이 잠깐 떠오르게 만들었고, 재빨리 박스를 처리했다. 그는 좋은 기억을 만들어, 다시 자신의 기분을 좋게 만들려고 할 것이다. 그는 이 미묘한 감정과 하루의 인상을 가능한 잘 익혀서 침묵하거나, 조심히 이 인상을 가지고 이야기 해볼 사람에게 전하는 것을 생각해 봐야한다. 아기 고양이의 시체와 죽음은 유쾌하지 않는 이야기 때문에. 그는 명심해야한다. 우리는 유쾌함을 바라며 죽음은 재빨리 누군가 치워줄 때까지 내버려두는 것이다.

 

 그는 아버지의 병원이 생각난다. 죽음은(의 이빨은) 검고, 숨쉬기 힘들며, 다 썩으며, 숨이 넘어간다는 말이. 무슨 뜻이 명확히 알게 된다. 그는 죽음이 고통스러운 순간만 없다면 아주 친숙한 것이라는 걸 알고 있다. 그러기에 그는 지금 좋은 감정과 좋으 관계와 신뢰에 감사한다. 그것들이 없다면 충분히 그를 안팎으로 썩어들며 죽게 만들 것이 그가 사는 세계에 넘치기에.

옅은 빛도 없는 과정에서 그를 다시 살맛을 돌게 하는 그 곳에 대해 그는 그를 던져야한다. 완성시키지 못할 지라도, 나아감에 의미를 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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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mission'은 중간 휴시간을 의미하는 영단어이다. 그런데 말을 형태소별로 끊을 때 흥미로움 점이 있다. 'Inter'과 'Mission'은 각각 의미를 풀이할 때 'Inter'은 안으로, 내부로 들어간다면, 'Mission' 임무라는 단어상의 의미도 있지만 더 잘게 쪼개볼 때, '보내다'라는 의미를 가진 'Mis'어두의 명사형이다. 즉 'Inter Mission'은 '안으로 보낸다'라는 의미로 풀이할 수 있다. 

 어디 안으로 보내는 걸까? 공연에 임하거나, 공연장에 들어가는게 아니라 어디로 다시 임하는 걸까? 이 질문에 역으로 반문하자면 공연을 보고 있을 때우리는 어디에 있는것일까? 감성(감정)을 가지고 관람하는 주체는 연극속에서 무엇일까? 말의 맥락을 자의적으로 해석해 보면, 우리는 공연으로 구성된 세계에 임했다가, 다시 우리가 사는 세계 '현실'로 회귀한다. 그런 맥락으로 우리는 현실로 보내지는 의미일까. 매우 흥미로운 단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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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은 그 존재가 무엇이든 상관없이. 태생적 성, 정신적(정체성적)성, 취향적 성은 각기 다를 수 있다. 그것은 절대적이며, 다양성의 존중과 인정은 필수이다.

 

다양한 만큼 상관없이 모두가 선해질 수도 악해질 수도 있음을 간과하는 맥락이 많은 미디어 매체를 통해 감지된다. 그 사람이 무엇에 저항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선 할 것이다. 사실 평범한, 그냥 선 하지 않는 사람도 자신의 권리를 주장할 수 있다. (우선 그 사람이 선악의 기준을 따지기 전에, '선 하지 않다'라는 명제로 정한다면) 삶이 있는 존재. 즉 사람들이 이성애자이든, 양성애자이든, 무성애자이든, 성적 취향에 상관없이 (중성적인 단어를 정의하기 힘드므로, 그 사람들) 사람들은 무엇이든 될 수 있다. 그가 가진 가능성과 잠재성으로 우리가 속히 말하는 선과 악 자체와 그 어중간한 사이에서 맡은 역할 들에 따라 수 많은 갈등속에서 살아가야 한다. 몸과 정신, 감성과 이성, 집과 거리, 공간과 장소, 친밀함과 친밀하지 않은, 사랑과 비사랑, 혐오와 비혐오. 단어로 표기하기 힘든 충돌들을 어떻게 가려내야 할지 가늠 되지 않는다. 우선 하나씩 살만한 곳에 대한 연구가 필요 할 듯하다. 또한 살만하지 않은 곳에 대한 연구도 병행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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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과 냇물

2020. 6. 28. 11:51 from 에세이

 물. 우리가 살아가는 대 섭취해야하는 필수적인 요소이다. 섭취가 아닌 다른 목적으로 필요한 경우는 무엇이 있을까?

대개 먹는 물이 아닌 물이 가진 의미는 여러 방면에서 설명 할 수 있다. 이제 말라버린 어른의 상투적인 말씨로 답한다면 '수력발전'과 '농사'로 답 할 수 있겠지만, 그 중에서 계곡, 바다, 물놀이를 갈 때, 그리고 배를 탄다는 것에 대해 의미를 둬보고 싶다.

 4대 문명에서는 모두 강을 기반으로 발전되어, 물질적인 발전과 정신적인 발전인 문화를 발달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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